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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희동 성당 한옥을 입다

가회동 성당, 한옥을 입다

가회동 성당은 2013년 11월 재건축 준공 이후, 성당 건축양식과 한옥의 조화로 북촌 방문객들 사이에서 이미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깊은 역사적 의미를 가진 성당답게 입구에 들어서면 한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성당 건물이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다. 전면부에 배치된 한옥이 주변의 마을경관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성당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친근감을 준다. 배롱나무와 돌담을 돌아 계단을 올라가면 비로소 성당건물을 만난다. 넉넉지 않은 대지면적에 공간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성당건물은 지하 3층, 지상 3층 규모로 건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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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옥상으로 올라가면 북촌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성전의 앞과 뒤쪽에 있는 한옥의 스카이라인을 보면 성당이 북촌의 한복판에 있다는 느낌을 준다. 북촌에서 성당 옥상만큼 더 좋은 전망대가 없을 것이다. 성전은 종교시설이기 때문에 고도제한 12m로 제한된다. 종교시설이 아니면 이렇게 높게 지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하면 성당 옥상보다 더 높게 건물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건축법규가 바뀌지 않는 한 영원히 조망권이 확보 된다. 남쪽으로 남산이 있고 첨단의 현대식 건축물이 보이지만 북쪽으로는 옛 건축물이 고풍스럽게 보존되어 현대와 과거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하늘정원은 전망대로도 손색이 없다.
종탑의 종은 1958년도에 독일에서 주물로 제작한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진 종으로 아주 작게 손가락으로 쳐봐도 소리가 얼마나 청아한 지 알 수 있다. 이 종은 예전 성전에 있던 것으로 종탑의 붕괴 위험이 있어서 타종을 중지했다.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서 녹이 많이 슬어 파기해야 할 것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버리지 않고 잘 손질을 해서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냈다. 1959년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당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이었던 노기남 대주교가 축성 했다는 사인이 종안에 기록되어 있고 이 자체가 골동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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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한 한복의 선비와 파란 눈의 외국인 사제의 어깨동무

새롭게 지어지는 가회동본당은 우리나라 첫 미사가 봉헌되었고, 박해가 시작된 지역이며, 마지막 황실에서 모두 세례를 받은 역사적 의미와 선교본당으로서의 역할을 담아내야 했다. 또한 북촌에 위치하였기에 장소적 정체성을 반영하여 “단아하게 한복을 차려입은 선비와 벽안의 외국인 신부님이 어깨동무하는 형상”을 콘셉트로 잡았다. 또한 북촌한옥마을에 어울릴 수 있는 단순하고 소박한 디자인을 기본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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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 담아낸 정성과 자부심

가회동 성당의 한옥은 흉내만 낸 게 아니라 진짜 한옥을 짓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공을 기울인 결과물이다. 요즘 한옥은 손쉽게 구할 수 있고 가격이 저렴한 외국산 소나무로 짓는 게 일반적이지만 가회동 성당의 한옥은 전국을 발품을 팔아 찾아낸 춘양목이라고 불리는 적송(赤松)을 썼다. 또한 송차선 신부는 공사 시작 전 각 분야의 무형문화재들을 모아 브리핑을 열어 ‘대표 작품’으로 불릴만한 한옥을 지어주길 부탁하였다. 무형문화재들은 직접 와서 한옥을 짓겠다는 ‘각서’까지 쓰면서 공사에 임했다니 그 정성과 자부심이 짐작된다.
한옥의 마루는 대청마루, 쪽마루, 누마루로 되어있다. 길 건너에서 보면 대청마루를 통해서 천상의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계단의 느낌을 가지고 성당을 바라 볼 수 있다. 쪽마루는 외부관광객들이나 순례자들이 와서 언제라도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게 했고, 누마루는 삼삼오오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지붕의 암막새와 수막새는 오병이어를 상징한다. 목수들이 얼마만큼 정성껏 만들었는지는 구석구석 드러난다. 예를 들면 목수들은 기둥위의 창방머리를 구름의 형태로 조각했다. 그 구름은 지붕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누마루는 목수의 더욱 섬세한 손놀림을 볼 수 있다. 누마루의 손잡이를 유심히 보면 꽃대 위에 꽃받침을 조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걸터앉는 손님들이 모두 꽃이 되는 이야기를 담은 한옥이 되었다.
나무는 모두 손대패로 치목을 했다. 기계대패는 보푸라기가 생기지만 손대패는 면이 매끄럽고 광이 나며 발수효과가 있어서 내구성을 향상시킨다. 뿐만 아니라 손대패는 한 번에 깎을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어서 손이 가는 1m 정도마다 결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가회동 성당의 한옥에는 어떤 나무에도 결이 없다. 그만큼 목수들의 손대패 기술이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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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회동 성당 사랑채는 가회동 거리풍경과 연속성을 보여주는 한옥건축의 모습과 전통 기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점 등을 인정받아 「2014 대한민국 한옥공모전」에서 ‘올해의 한옥상’, 「2014 서울시 건축상」에서 일반부문 ‘최우수상’, ‘시민공감상’, 「2014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민간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한국 천주교회 첫미사 - 성지 가회동

역사적으로도 가회동 성당은 한국 교회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가회동 성당이 위치한 북촌일대는 최초의 선교사 주문모 신부가 조선에 밀입국하여 1795년 4월5일 부활대축일에 최인길의 집에서 조선 땅에서의 ‘첫 미사’를 집전한 지역이다. 또한 1955년 조선 마지막 황실 가족인 의친왕 이강과 왕비 김숙이 세례를 받은 곳이 가회동 성당이다.
성당 건너편 500m쯤 떨어진 곳에 주 신부가 미사와 세례 때 성수로 썼다는 석정보름우물(계동길 110)이 남아있다. 지금은 우물이 폐쇄됐지만 한국천주교 최초의 성수라는 역사성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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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가회동성당 홈페이지(http://gahoe.or.kr)

오픈된 공간, 소통하는 가회동 성당

가회동 성당의 가장 큰 매력은 외부인에게 활짝 열려 있다는 것이다. 성당은 모두에게 개방하고 함께 소통하기 위한 섬세한 배려가 돋보인다. 한옥을 성당 건축양식에 끌어들인 것도 북촌 지역과 잘 조화될 수 있도록 하고, 신자가 아닌 외부인도 가벼운 마음으로 드나들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관광객들은 한옥 사랑방에 걸터앉아 도시락을 먹거나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혼배식이 있는 날이면 마당은 하객들을 위한 연회장으로 쓰인다.
성당을 찾은 날 송차선 주임신부는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성당을 방문하는 사람마다 사랑채로 불러들여 직접 내린 커피를 대접한다. 매주 목요일 오후 1시30분부터 4시까지 문을 여는 한옥카페에서는 송차선 신부가 직접 내리는 핸드드립 커피를 맛 볼 수 있다. 금요일 같은 시간에는 김귀웅 신부의 꽃차가 제공된다. 음료는 모두 무료이며, 자발적인 건축기금 마련을 위해 함을 마련해 놓았다.
또한 매주 금요일 10시 미사 이후에는 성당의 곳곳을 둘러보며 설명을 들을 수 있는 해설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가회동 성당 1층에는 역사와 건축 배경을 설명하는 역사전시관을 마련해 놓았다. 또한 가회동 성당의 기념품을 직접 제작해 판매하고 있는데,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한옥 건축 후 남은 적송을 활용한 기념품이다. 여기에는 가회동 성당의 일부를 소장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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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가회동 성당을 방문할 때는 기도하는 곳이라는 점을 유념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성당을 둘러보는 등 신도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출처 : 가회동성당 홈페이지(http://gahoe.or.kr)